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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ssay/(2) Document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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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잠시 미루고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내년 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간선제로 치루겠다는 <특별담화(4.13 호헌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본인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읍니다. 

이제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이와 함께 본인은 평화적인 정부 이양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합니다." 

- 특별 담화문 중 일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후임에게 대통령을 위임한 뒤 여당의 대표가 되어서 국회의원 공천권을 독점해 정치, 사회, 경제계를 장악하려는 영구적인 집권 방식인 이른바 <내각제 개헌>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이 담화는 지금처럼 직접 투표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선제를 바랬던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는 결정이었고, 이미 1년 전인 86년 7월 30일에 직선제로 개헌하겠다는 합의안이 통과되어 논의 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출처 : 네이버 뉴스

이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서울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①수많은 학살과 폭력사태의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 ②내각제 개헌 폐지, ③직선제 개헌 이행, ④정권의 즉각 교체를 요구하는 집회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정리뉴스]박종철 사망 30주기···사진과 글로 정리해보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4일은 박종철 열사의 30주기입니다. 1987년 이후 해마다 돌아오는 기일이지만,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한국사회 현 상황은 오늘 기일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향이네에서 지난해 같은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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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을 감지한 재야 인사들은 87년 5월 27일 향린교회에 모여 문익환, 김영삼, 김대중, 함석헌, 박형규, 김승훈, 이우정 등을 중심으로 <서울대 박종철 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를 통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들은 6월 10일에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범국민대회(6.10 국민대회)>를 열어 “온 국민의 이름으로 지금 이 시각 진행되고 있는 (전두환 대통령의 후임자인)노태우의 후보 지명이 무효”임을 선언하겠다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집회 하루 전인 6월 9일 신촌에서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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