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윌슨(영국 노동당 당수 겸 영국 총리, 사회주의자) : 이거 비공개 접견 맞죠? 먼저 저는 평생 단 하루도 육체적인 노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전 노동자가 아니라 학자입니다. 명문대인 옥스포드의 교수죠. 사실 맥주(당시 영국 노동자의 상징)도 싫어합니다. 브랜디가 더 좋아요.
통조림 연어보다 갓 잡은 연어가 좋고, 살코기가 들어간 파이보단 안심 스테이크가 더 좋습니다.
그리고 파이프 담배를 정말 싫어합니다. 전 시가에 환장해요. 그런데 시가는 자본주의의 특권을 상징해 선거 유세장이나 카메라 앞에선 파이프 담배를 핍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자신에게 솔직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리더입니다. 그게 저희의 일입니다. 혼란을 야기하기보다는 혼란을 잠재워야죠.
그게 우리 일이고 폐하는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그런 면에서 무딘 감정은 축복입니다. 사실 (리더에게) 인간미란 사치입니다.
훗날 여왕은 사고 현장에 바로 가지 않았던 일이 가장 후회스러웠다고 말하며 이후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사고 현장을 찾았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크라운> 시즌 3 에피소드3, 에버판 광산 붕괴 사태 현장에 가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1966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9시 15분. 영국 웨일스 지방의 광산 마을인 에버판에서 산사태로 144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산사태는 광부들이 석탄을 캐고 남은 것들을 버리려고 쌓아둔 7개의 인공 언덕 중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쌓은 광물 찌꺼기라 마을을 덮칠 위험이 있었고 언덕 아래에는 지하수가 흘러 지반이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주민들은 붕괴 위험과 지반 아래 지하수의 존재를 석탄청(NCB)에 지속적으로 알렸으나 전부 무시되었습니다.
그렇게 언덕이 무너져 마을을 덮쳤습니다. 수업을 받던 아이들이 그대로 석탄 찌꺼기에 깔려 숨을 거뒀습니다. 주민들은 밤새 맨손으로 잔해를 파며 아이들을 구조했으나 대부분 이미 사망한 뒤였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뒤 여왕은 "군주는 사고 현장이 아니라 군인들이 있는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라는 중세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사고 현장에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석탄청 장관은 서리대학교(영국 내 10위권 대학교, 세계 대학 순위는 연세대와 비슷한 190~200위 사이)의 명예 총장 취임식 참석을 이유로 사고 현장에 가지 않았고, 이후 현장에서 복구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거짓말까지 드러나 더욱 비난을 받았습니다.
뒤늦게 왕실은 총리와 남편 마운트배튼 공을 파견했으나 이미 여론은 등을 돌린 상태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자녀와 집을 잃은 주민들은 여당이었던 노동당과 왕실에게 재해 안정 비용의 지급과 인공 언덕의 즉각적인 이전을 요구했습니다.
총리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해당 요구는 부결되었고 조사단은 "며칠 전부터 유례가 없는 폭우가 쏟아져 기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로 결론 짓습니다.
결국 관련 기관과 장관, 노동당, 당시 지하수의 존재를 알았던 현장 작업자 등 누구도 처벌받지 않은 채로 사건이 종결됩니다.
왕실 측근에 따르면 여왕은 사고 현장에 바로 가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을 평생 후회하며 이후 자원 봉사자나 구조대보다 더 자주 현장에 가서 주민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