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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Unusual type/(2) Etc

보호받지 않을 권리와 보호받고 싶어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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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제적·사회적·심리적으로 의지하고 싶다거나 케어를 받기를 원한다는 등 표현과 강도는 다르지만 결국엔 타인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싶다는 뜻이다. 의외로 좋은 배경을 가지고 뛰어난 학벌과 스펙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저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운동으로 따지면 누군가가 내 무게를 대신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바벨 무게는 조상님이 들어주냐?"는 피지컬 갤러리 김계란의 말처럼 무게를 더 많이 들고 싶으면 스스로 운동해야 한다.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순간부터 운동이 아니다.

물론 운동에도 도움이 필요하다. 운동을 막 시작했거나 몸이 약하고 선천적으로 신체 에너지가 많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운동 수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P.T를 받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영양제 섭취 그리고 망가진 대사를 바로 잡기 위한 식단, 운동 자체에 도움이 되는 부스터(BCAA, 크레아틴, 아르기닌, 카페인 등)와 장비(손목 스트랩, 코어 벨트, 글러브, 엘보우 및 니패드 등)의 보조가 필요하다.

단 도움의 전제 조건은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상태여야만 한다. 혼자 운동할 수 없는 상태인데 다른 사람이 도와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여기서 핵심은 도움, 보조이지 보호, 의지, 케어, 의탁이 아니다.

주변 환경도 중요하다. 불규칙한 식사 시간, 잦은 약속과 야근, 인프라 부족 등 운동이나 식단을 지키기가 어려운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무조건 환경 탓만 할 게 아니라 홈트, 출퇴근길에 자전거 타기, 점심 먹고 산책하기, 약속 줄이기처럼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환경을 바꾸고 이겨내려는 시도는 해봐야 한다.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상여자, 상남자, 알파, 공주와 같은 타이틀에 집착한다. 자신이 그런 타이틀을 얻기를 바라고 타이틀 획득이 불가능하면 타인에게 타이틀 프레임을 씌운다. 그리고 마치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합리화를 시작한다.

"내가 아니라 너의 문제다", "나는 좋은 사람인데 아직 잘 맞는 사람을 못 만났을 뿐이다", "아직 시기가 아니다", "난 잘 지내고 있다", "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너가 내 가치를 잘 모르는 것이다", "내 가치는 내가 판단한다", "내가 만족하면 되었지" 등등 전부 합리화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선택, 경험이 부정당하므로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또 앞에서 말하는 타이틀은 나보다 더 강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앞의 네 가지 타이틀의 필수 조건은 '높은 자존감'이다. 높은 자존감은 대부분 한계를 극복한 경험에서 나온다. 꼭 수능, 입사 시험, 공무원 시험처럼 거창하고 거대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삶에서 자기 한계를 많이 뛰어넘은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높다.

더 달리고, 더 읽고, 더 배우며 자기 영역을 계속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쌓이는데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현실에 안주한다.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중독의학 교수이자 스탠퍼드 중독치료센터 소장인 애나 렘키(Anna Lembke)는 2022년 4월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 <도파미네이션 : Dopamine Nation>에서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강조했다.

현대 사회는 합리화에 따른 보상, 즉 쾌락에만 집착한 나머지 뇌가 중독되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야근한 나에게 주는 야식, 운동한 나에게 주는 치팅 데이, 담배와 술, 습관성 폭식, 무절제한 섹스 등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고의 쾌락을 얻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기 절제와 의지의 충돌이 일어나고 충돌은 곧 고통이다. 미라클 모닝을 하기 위해서 잠을 줄이고 근성장을 위해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며 식단을 지키는 것처럼 자기 한계, 성장과 고통은 필수 불가결의 관계다.

대신 성장해 주고 대리로 고통을 느껴주는 것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에도 의탁은 없다. 보호, 의지, 케어는 자기 삶의 포기일 뿐이다. 무조건 환경, 사회, 배경 탓만 한다면 어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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