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 Unusual type/(2) Etc

범죄 예방, 사건 해결과 관련이 없는 신상 공개

반응형

범죄 수사나 추리물을 보면 항상 주인공이 용의자의 마스크, 복면을 벗기며 "너 누구야!"와 같은 대사를 한다. 너무 뻔한 클리셰지만 빠지면 섭섭한 이 장면은 실체가 없는 공포는 더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의 뇌는 대상화를 통해 생물-비생물, 인간-비인간, 성별, 인종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상황을 분석한다. 그래서 가끔 예수의 형상과 비슷한 구름이라거나 무지개 안에서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대상화 때문이다.

(성적 대상화가 여기서 나왔고 성적 대상화는 사회적 개념, 대상화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서로 다르다. 즉 대상화가 나쁘다는 말은 잘못된 뜻으로 뇌 기능을 멈추고 다같이 죽자는 의미. 성적 대상화가 나쁘다는 표현이 정확함.)

신상 공개도 실체가 없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심리적 장치일 뿐 범죄 예방과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유의미한 통계나 과학적 데이터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미 수감된 범인이 갑자기 교도소 밖으로 나와서 범죄를 저지를 수 없으니 애초에 해당 범인은 범죄를 저지를 수 없기에 예방이란 말은 모순이다.

물론 범인이 검거되고 짧은 기간이나마 해당 범죄가 줄어들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건 신상 공개의 효과가 아니라 검거의 효과다. 수사기관이 눈에 불을 켜고 해당 범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해당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늘어나진 않으니까 말이다.

신상이 공개될 두려움에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이 순진무구한 주장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하다. 강간, 살인을 하는 사람이 신상 공개를 두려워해서 손에 든 칼을 내려놓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또한 신상 공개가 통계적, 과학적으로 어떻게 범죄 예방, 해결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일까? 예를 들어서 강도 A를 검거한 뒤에 강도 발생 수가 줄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럴 때 온전히 A의 검거로 강도가 줄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긴 쉽지 않다.

먼저 강도가 줄었다고 말하려면 줄기 전과 줄었던 후, 다시 말해서 비교군이 되는 기준과 시점을 정해야 한다. A의 검거 이전은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무슨 기준을 세울 것이며 검거 이후는 언제까지 볼 것이며 범죄가 일어난 지역만 볼 것인지 아니면 전국을 볼 것인지 등 논의할 내용이 많다.

이건 기본 세팅이고 여기에 통계학의 환경 변수, 분석 이론의 유효성 검증이 끝나야 통계에 쓸 수 있는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다. 환경 변수란 통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특이사항을 말한다.

A의 검거 이후 신상 공개로 범죄가 줄었다면 그게 온전히 신상 공개 때문일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검거라는 집행 수단의 영향도 있고, 예를 들어서 작년부터 강도 특별 수사 기간이었는데 집중 수사로 인한 결과물이 우연히 맞아떨어질 수도 있으며 다른 관할 경찰서에서 별개의 사건을 수사하다가 연계해서 검거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마찬가지로 언론에서 머그샷, 신상을 공개한 시점을 범죄 예방과 재범 확산 방지의 기준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말한 여러 변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립된 조건이란 없다.

지금까지는 강도를 예시로 들었지만 성범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범죄 알리미에 등록이 되지만 강력 범죄를 일으키는 범인 입장에서 신상 공개의 두려움으로 행동을 스스로 저지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미미한 예방 효과 정도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 알리미 등재는 수사 단계에서 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이 다 끝나고 형이 확정된 다음에 진행되는 것으로 머그샷 공개와는 아예 다른 개념이다.

그러니까 신상 공개는 대중의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고 범죄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범인에게 마이크를 쥐여주고 업계 포상으로 쓰이는 신상 공개에 반대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