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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Unusual type/(1) Personality

담배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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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3hZKFUObACw&t=96s&ab_channel=%EC%98%A4%EB%8A%98%EC%9D%98%EC%BA%A0%ED%8D%BC%EC%8A%A4

 

난 아직도 담배 피는 사람이 좀 멋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멋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예의와 성실이 최고의 덕목이었던 20세기에 태어난 나에게는 여전히 세련되어 보인다. 일종의 배덕감 같다.

 

딱 한 번 담배를 펴본 적이 있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신촌캠퍼스에 복학했던 26살에 처음으로 담배를 폈다.

 

그때 운 좋게 처음으로 씨씨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대가 혼잣말로 "담배 피는 남자가 참 멋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담배를 폈다. 애초에 돈, 건강, 냄새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담배 피는 모습을 좋아한다는 게 포인트였다.

 

출처 : 패키지샵

 

한 개비로 잃는 내 건강과 편의보다 담배를 피는 짧은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사랑받고 싶었다. 자의라기엔 애매하고 타의라기엔 더더욱 애매한 이유였다.

 

상대의 말을 무작정 듣고 뛰쳐나왔는데 참 난감했다. 담배를 사본 적도 없어서 뭘 사야할지 몰랐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눈앞에 보이는 CU에 들어갔다.

 

아르바이트생이 인사를 했는데 너무 긴장해서 대꾸도 못 했다. 좀 머뭇거리다가 표지가 이쁘고 이름이 제일 고급스러웠던 시가 No.6를 골랐다.

 

출처 : https://blog.naver.com/luckynam10

편의점을 딱 나오는데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담배를 쥐고 있는 손안에서 뿌듯함과 성취감이 마구 샘솟았다.

 

그때부터 담배를 항상 들고 다녔다. 이게 무슨 신분증도 아닌데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들었다. 때아닌 반항이자 뒤늦은 일탈이었다.

 

참 우습게도 정작 그 사람 앞에선 몇 번 피지도 않았다. 담배 샀다고 한 번 피우고 데이트할 때 잠깐 피우는 것 말고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술 마실 때 분위기에 취해 열심히 폈지만, 그 역시 담배의 맛보단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는 짜릿함과 담배를 피는 내 모습이 재밌어서였다.

 

그래서 담배의 맛을 하나도 몰랐다. 그냥 그걸 피우는 내 모습이 좋았다. 물론 그 사람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좋아해 주긴 했으니 소정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출처 : 매일경제

그런데 첫 씨씨가 100일 만에 허무하게 끝나면서, 내가 담배 피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그 누구도 내가 담배 피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좋아할 이유도, 좋아할 수도 없었다.

 

내가 왜 담배 피우기 시작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무도 내 흡연을 흥미롭게 보지 않았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 모든 걸 다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며칠 뒤 남은 담배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사람 때문에 시작한 담배라 더 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금단현상도 없었다.

 

지금도 가끔 상대가 담배를 권하면 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필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같다. 사랑받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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