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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ssay/(2) Document

넷플릭스 지옥을 보고 적어보는 지옥의 기원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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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 공식 포스터(출처 : 넷플릭스 코리아)

지옥이란 개념은 언제 처음으로 등장했을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옥의 개념은 서구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늘날 지옥의 기원을 중세로 보고 있다.

물론 중세 이전에도 나쁜 일을 하면 죽어서 좋지 못한 곳에 가거나 고통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는 있었다. 기원전 2000 ~ 20년 사이에 쓰인 메소포타미아의 <에누마 엘리시>, <길가메시 서사시> 등의 고대 종교 저작물에서도 선과 악의 대립과 죽음 이후의 심판이 그려지는 것으로 보아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세 이전에는 막연한 관념으로 존재했던 지옥은 중세의 기독교 문화를 통해 불타는 지옥, 자신의 죄로 고통받는 사람들, 악마 등의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석판 중 일부 (출처 : 위키백과)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지옥이란 개념은 언제 처음 생기게 되었을까? 지옥의 기원을 찾으려면 종교의 기원 먼저 살펴봐야 한다. 지옥은 인간의 신 이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므로 종교의 기원과 필수(분리)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종교학, 종교사회학과 정신분석학 등에 따르면 종교는 원시 사회의 자연 숭배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시의 사람들에겐 자연이 곧 신이었다.

모든 생물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생물학적인 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로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존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연은 인간이 조종하거나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자 생사를 쥐고 있는 강력한 힘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 앞에 언제나 좌절과 고통을 맛보았고 늘 두려움과 불안, 공포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고대 신앙의 대표적인 모습(출처 : 티스토리)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을 이길 수 없는 경배의 대상으로 설정해 '인간은 어차피 자연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것으로부터 종교가 생겨났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고대 사회로 넘어오면 자연은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에서 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원시 사회에서는 사건이나 현상 하나로 세계 전체를 이해했다면, 고대 사회에서는 언어와 사고 능력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삶을 더 넓고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자연은 신이 아니었다.

그동안 삶의 경험으로만 익힐 수 있었던 자연적 현상들이 언어를 통해 기록되어 자료가 만들어졌고 자료를 통해 예측 가능한 패턴이 되었다. 1월엔 눈이 오고 3월엔 새싹이 피어나니 1월엔 쉬고, 3월에 일을 하면 더이상 굶을 일이 없었다.

 

자연 숭배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토테미즘(출처 : 위키백과)

그렇기에 자연은 신이 아니었다. 어떤 인과관계로 연결된 하나의 현상이자 결과에 지나지 않으므로 상과 벌, 축복과 저주 등 신의 현현(자신을 드러내는 행위), 신의 표현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가운데 의례(종교의식), 신학(종교 이론), 교리, 전통이 생겨나며 오늘과 유사한 모습의 제도화된 종교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시기에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적인 개념이 처음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권선징악은 모두가 가지고 있었겠지만,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 교육, 문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학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말과 글로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끼치는 제도화된 종교가 형성되었을 때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혔다고 생각한다.

 

파라오 벽화 중 일부(출처 : 위키백과)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의 개념은 왜 생기게 되었을까? 여기엔 두 가지 추측이 있다. 첫 번째 추측은 사회 통제설이다. 사회 통제설의 대표적인 예는 이집트의 파라오 신앙(paɾuwˈʕaʀ)이다.

파라오는 이집트 최고 신 태양신 라의 대리인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신적 존재다. 오직 라의 임명을 받은 파라오만이 이집트를 통치할 수 있으며 죽음 뒤에는 미라가 되어 부활을 기다리며 부활 후에는 끝내 영생을 얻게 된다.

여기서 천국과 지옥은 가장 강력한 통치 수단으로서 신의 대리자인 파라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가서 영생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내세의 안정과 영생을 위해서는 파라오의 법을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했다. 즉 천국과 지옥의 개념에서 지옥을 더욱 강조해 상벌의 용도로 사용한 셈이다.

 

태양신 라에 대한 설명(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이는 신학에서 신론(신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정-논리(ἀπόφασις)와 비슷하다. 부정-논리란 부정적 표현, 부정문으로만 신을 설명할 수 있다는 역설적 논법이다.

1. 신은 인간이 아니다. → 그러므로 초월적인 존재다.
2. 신은 죽지 않는다. → 그러므로 인간과 다르다.
3. 신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 그러므로 모든 것을 관장한다.

1-1. 파라오는 인간이 아니다. → 그러므로 신적 존재다.
1-2. 파라오를 따르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 그러므로 파라오를 따라야 한다.
1-3. 파라오의 법은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 그러므로 파라오의 법을 잘 지켜서 지옥에 가는 걸 피해야 한다.

 

연쇄삼단논법 설명 예시(출처 : 브런치)

이처럼 법을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보편적 사고를 통해 사회 체제에 잘 적응하도록 유도했다는 게 첫 번째 추측의 주된 내용이다.

두 번째 추측은 현실 참작(불안과 불만 해소)이다. 첫 번째 추측이 언어와 법, 문화 체계를 통해 논리적 설득을 했다면 두 번째 추측은 심리적 설득에 가깝다.

앞에서 말한 것 같이 물리 법칙에 적용을 받는 모든 생물은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소멸을 경험한다. 따라서 모든 생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 불안을 가진 채 살아간다.

이런 공포와 두려움, 불안을 막기 위해 천국과 지옥이 등장한다. 모든 생물은 언젠가 죽음을 경험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내세가 있다는 희망을 주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안정제 또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 (공포와 두려움의 일시적인 해소)

 

함부라비 법전 중 일부(출처 : PD저널)

또는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현실 참작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우르남무 법전, 함무라비 법전, 샤리아법 등 고대부터 인간은 동해보복(눈에는 눈, 이에는 이)과 권선징악의 논리를 정의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동해보복과 권선징악은 사회적인 권력을 가진 집단만이 실행할 수 있었고, 이것 역시 그들 위주로 맘대로 해석되거나 법을 피해 가는 일들이 훨씬 많았다.

그렇기에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공평하지 않다는 사회적 불만이 쌓여서 실질적으로 이와 같은 불만을 해소할 수 없게 되자 '정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 가고 정의를 따르는 자들은 천국에 간다'는 논리를 만들어 불만을 해소하려는 현실 참작용으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요약하자면 지옥은 제도화된 종교의 영향으로 사회를 잘 통치하기 위한 통치 수단 내지 현실적인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 사람들이 삶을 좀 더 윤택하게 살아보려는 해석학적 전환의 의미로 생겨난 개념이다.

실존 여부를 떠나서 지금도 상당히 강력한 사회적, 심리적 장치로 작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테 신곡의 삽화 중 일부(출처 : 월간 조선)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 지옥 편>, 제3곡 중,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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