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 Essay/(2) Document

<긍정 과잉 시대와 힐링 강박증>

반응형

① 저는 힐링, 위로, 긍정이라는 말이 제일 싫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힐링을 논하는 사회가 우리 모두를 나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잘못된 습관을 찾아 고쳐서 제거하고, 무모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보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집중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들이 필요합니다.

 

"기업은 인간을 부품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가슴이 끌리는 일을 하라.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의 잘못이다"와 같이 무책임한 조언이 또 어딨습니까?

 

② 인간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걸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어느 의학 드라마를 보고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먼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의전원 진학을 해야겠죠. 당장 수익이 없으니 퇴직 전에 신용 대출을 받거나 적금을 깨서 학원에 등록하고 교재를 삽니다.

 

그런데 문과라서 생물학, 화학 전공자들처럼 기본적인 과학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의학 공부를 하기 전에 기초 과학 공부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 기초반에 들어가 죽어라 공부를 합니다.

 

겨우 기초반을 마치고 심화반에 들어가 본격적인 의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의학 서적은 영어가 많아 영어를 모르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의전원 시험을 보려면 토플 성적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1~2년간 토플 준비를 하며 워밍업을 합니다. 적당한 점수를 받고 의학 서적을 다시 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의사가 되고 싶으니까 공부에 매진합니다.

 

③ 이때 제가 합격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문과 출신의 30대 초반 회사원이 SKY 및 해외 대학의 화학, 생물학 전공자들을 이기고 의전원에 합격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이런 저에게 필요한 건 힐링, 위로,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닙니다. 무모한 도전은 그만두라는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무턱대고 힐링, 위로를 권하는 건 무책임한 일입니다. 산 정상에 올라갈 준비가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올라갈 수 있다며 등을 떠미는 희망 고문일 뿐입니다.

 

④ 좀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평소보다 일이 많았거나 격한 운동을 했다면 당연히 몸이 피곤해지겠죠.

 

마찬가지로 퇴근 후에 밤새 드라마를 보다가 출근했다면 눈도 피곤하고 몸도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생리적인 문제에도 '힐링'이 필요하다며 불필요한 위로를 건넵니다.

 

그냥 잠을 자면 나아질 일인데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며 에세이를 추천하고 뉴에이지 음악을 골라주며 YOLO 소비를 부추깁니다.

 

어떻게 신체적인 피로가 마음의 문제가 될 수 있고, 시간 관리에 실패해 드라마를 보다가 출근한 사람에게 위로가 필요한 걸까요?

 

⑤ 여기에 이별, 직장 내 갈등, 친구와의 다툼, C+로 도배된 성적, 아르바이트를 하며 실수했던 일, 보고서 오타, 물건 떨어뜨린 일, 들통난 거짓말에도 힐링과 위로가 들어갑니다.

 

말 그대로 위로 과잉, 힐링 강박의 시대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힐링이란 말을 쓰며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젠 힐링보다 킬링이 필요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