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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Unusual type/(2) Etc

고질라에 대한 찬사, 괴물을 해석하다. 그 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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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스포없이 고질라를 '일본 민족주의'로 멋대로 해석하기.


"엉성한 30번째 고질라, 크기만 커졌다." 오늘 저녁, 혹평계를 독주하고 있는 문제의 작품인 고질라를 보았다. 출구를 나오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일본 원작의 느낌을 많이 살리려고 노력한 작품."이었다. 관객들은 고질라의 몸집과 행동에 비웃음과 야유를 보냈지만, 그 속에는 나름 의미있는 '코드'가 들어있었다.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고질라는 무차별적인 행동을 일삼는 단순한 '괴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이라는 뿌리 깊은 코드를 가지고 있는 일본 작품의 특성상, 고질라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일종의 신적 존재와 같은 모습으로 일관되게 등장한다.


고질라에 대한 의문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물음, "유독 일본은 왜 거신과 거물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이 원할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전쟁 주도국임과 동시에 패전국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국가 중 하나다. 특히, '원자폭탄'에 대한 치욕을 가지고 있는 터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후 상당히 늘어났고,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를 기초로 일본은 무의식적으로 원폭에 대한 두려움과 극복의지를 몸속에 지녔는데, 이것이 거신과 거물이라는 거대하고 완벽한 방어체계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이 대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 거신은 일본의 문학작품, 애니메이션과 영화, 심지어 산업체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일부 학자들은 독일로부터 영향을 받아 발전된 일본 고유의 철학사상들이 집합된 것이라고 설명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최근에는 잠시 누그러진 것처럼 보인다.


즉, 고질라는 원폭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생존에 대한 집착과 발악을 통해 생산된 희망이자 바램이다. 원폭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 것에 대한 무능력함과 무기력을 느낀 일본은 허무주의와 패망한 제국주의에 대한 미련, 기득권으로서의 주도권을 뺏긴 것에 대한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바닥으로 떨어진 일본을 일으키기 위한 처절한 문예부흥으로 거듭난 고질라가 헐리우드를 통해 재생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시기에 30번째 고질라가 탄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작품의 줄거리와 제작의도를 통해 어렴풋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도 패전국에 대한 문제를 겪고있다. 위안부, 평화라는 명목하에 쟁취하고자 하는 무력에 대한 자국민의 요구 등 위태로운 나날을 걷고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고질라는 원폭에 대한 극복의지가 담긴 세대에 생산된 작품이다. 그 작품을 보고 듣고 경험한 신세대는 현재 일본의 구세대, 다시 말해서 사회의 핵심인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들에게 고질라는 단순히 '괴수'가 아닌 어려움을 이겨낸 희망의 상징이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인 셈이다.(마치 대한민국의 IMF 당시,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박세리와 박찬호처럼 상징적인 의미였을 것이다.)


내외적으로 패전에 대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과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고질라'를 통해, 재도약을 꿈꾸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바닥으로 떨어진 자국민들의 마음과 대외적인 평가를 다시 살리기 위한 노력, 고질라를 통해 온전히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이 보여주는 것보다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것에 집중한 오늘날의 고질라는 일본에게 희망과 발전 그리고 도약을 가져다주는 '민족주의'라는 또 하나의 발걸음으로서 작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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