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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Unusual type/(2) Etc

경제적 소득에 따른 기도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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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김관성 님의 글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이탤릭체로 된 부분은 원문입니다.

https://www.facebook.com/oyaventure/posts/10220904777502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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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신자들의 수가 많은 교회일수록 기도 응답의 고백이 많다. 난한 사람들과 작은 교회는 기도 응답도 잘 안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도가 진짜 응답이 되어 감사의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응답도 능력이 있어야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자기가 가용할 수 있는 약간 얍삽한 수단으로 삶의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해놓고 기도응답이라 선언한다.

 

뭐 그것도 응답은 응답이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면 능력과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기도는 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형식적인 기도 몇 마디 던지고 자기가 문제 해결의 단추를 가볍게 누르면 다 끝나는데 뭐.

 

가난한 사람들은 새벽기도, 철야, 기도원, 금식을 해도 그 서러운 삶에 좋은 날이 찾아오지 않는다.

 

찾아와도 잠깐이고 그들의 가난은 가난과 친구가 되어 더 가난한 자리로 다시 내몰린다.

 

“하나님. 가난한 자를 편드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탄식에 응답하소서. 너희들이 가서 그들과 함께해라. 뭐그런 말 좀 하지 마시고 직접 그들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우리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습니까?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시오.”


교회의 응답은 일종의 연출이다. 서울 도심부에 있는 중대형 교회의 신자들은 언제나 응답을 받는다.

 

남편의 승진을 위한 기도, 다음 달에 들어오는 외제차가 잘 도착하길 바라는 기도, 아이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라는 기도.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이기고 혼자 사업을 모두 독차지하길 기원하는 기도.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싶다는 애원, 장로 직분을 받아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우리 교회가 제일 커져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 등 중대형 교회의 기도는 항상 응답을 받는다.

 

 

반면 도심부에서 벗어난 미자립 교회의 기도는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다. 감사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생일헌금, 선교헌금을 모두 내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다.

 

교역자들은 이런 응답을 연출한다.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준다고 신자들을 현혹한다. 무조건 기도를 해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응답을 받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부유한 교회에서 헌금이 늘어나고 신자가 늘어나는 게 응답일까?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게 기도일까?

 

오늘도 당신의 자비로운 하나님은 교회의 크기와 신자의 재산에 따라 아주 공평하게 응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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