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지금까지 한 번도 결혼에 대한 필요성이나 압박을 느끼지 못했다. 생애 주기마다 요구되는 일을 소화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엄마와 친척, 직장 동료들이 연달아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낭만은 1%, 현실은 99%'라는 어느 광고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결혼은 현실이다. 같이 생활할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고 적절한 수준의 생활권, 공동 생활비 등 조율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리고 자녀 계획이 있다면 육아와 교육에 필요한 사회적·경제적 자원 및 상호 간 건강 문제까지 체크해야 한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27650_35744.html
② 무엇보다도 평생 한 사람과 산다는 개념이 아직은 낯설다. 주변의 기혼자들은 "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마음이 바뀐다"고 말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사랑의 유효기간은 2~3년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이란 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일종의 각성제로 쾌감 신경을 자극해 인지 능력, 감각 능력이 향상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행복하게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이 물질은 대상을 인식하고 2~3초 안에 생성된다. 따라서 뇌과학적으로 첫인상은 2~3초 안에 결정된다. 2~3초 안에 끌림이 있어야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어 사랑에 빠진다.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669762
③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닐에틸아민은 생성 후 2~3년이 지나면 분비되는 양이 서서히 줄어든다. 나중에는 거의 나오지 않아서 어떤 학자들은 페닐에틸아민의 감소가 권태기의 원인이 된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페닐에틸아민의 분비가 멈추면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편안함,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옥시토신은 사회성, 협력, 보살핌, 심리적 안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이다. 또 옥시토신은 출산 후 자궁 수축을 돕는 중요한 호르몬이다. 특히 아이가 산모의 유두를 빨 때 가장 많이 분비되므로 모유 수유 찬성파의 주된 논리 중 하나로 쓰인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 이전에 하나의 동물이므로 호르몬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즉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2~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만 유효한 행위이다.
http://www.astronomer.rocks/news/articleView.html?idxno=87255
④ 그렇다면 2~3년 뒤에 찾아오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꼭 결혼을 통해서 느껴야만 할까? 사실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엔 아직 나의 사회적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
일단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결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하려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인맥을 쌓는 걸 좋아하는 성향인지 먼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인간적인 관계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성향이라면 결혼이 주는 안정적 관계는 큰 메리트가 아니다. 오히려 타인과 개인적인 생활을 공유해야 하는 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타인과의 생활을 공유하는 건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타인의 관심이나 사회적 영역에서 벗어난 완전히 독립적인 심리적·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모든 걸 타인과 공유하고 싶지도 않고 나만의 영역 안에서 편히 쉬고 싶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나만의 영역이란 게 존재할 수가 없다.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책임이 있고 부양의 의무도 있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8231228001
⑤ 어떤 부부들은 일주일에 하루 또는 일주일에 특정한 시간을 정해서 각자 개인적인 활동을 하며 독립된 영역을 보장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로의 독립을 지켜주려면 가사·육아 등의 문제를 외부(가사 도우미 및 가사 서비스 이용, 가족이나 친구에게 부탁하는 등)에 맡겨야 가능하다. 외부에 맡길 경우에는 당연히 경제적·사회적인 자원이 소모되고 자원의 소비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개인의 독립된 공간 역시 성립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결혼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합리적인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아직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고 누군가와 생활을 공유할 정도로 간절한 것도 아니기에 당장은 고려할 만한 선택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