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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ssay/(2) Document

<가짜 사나이>에 대한 짧고도 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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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짜 사나이>의 누적 조회 수가 곧 1억을 돌파한다. 연출, 분량, 기간, 제작비(시즌 1 기준, 약 4천만 원)를 생각해본다면 엄청난 성공이 아닐 수가 없다.

먼저 가짜 사나이는 MBC의 <진짜 사나이>의 패러디 컨텐츠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한민국 <UDT/NAVY SEAL>의 훈련을 체험하는 방송이다.

 

출처 : 왓챠

전직 UDT 대원들이 교관으로 참가해 게스트들과 일주일 정도의 짧은 훈련을 하는 <가짜 사나이>는 제작 의도를 "진짜가 되기 위한 가짜들의 이야기"로 "나태한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한 훈련 체험"이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단체 훈련을 기획한 건 아니고 현재 321만 유튜버인 <피지컬 갤러리>의 김계란이 공혁준이라는 스트리머와의 합방에서 "이런 새끼는 진짜 UDT 훈련 받아서 정신개조 시켜야 한다"는 말을 했고, 여기에 재미를 위해 게스트를 더 모아 판을 키운 게 가짜 사나이다.


2. 자세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분명 제작 의도는 나태한 삶의 변화인데 애초에 <UDT/NAVY SEAL> 훈련의 목적은 인간성 개조가 아니라 특수부대원의 선발 및 양성이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고 양성해 실전에 투입하는 게 훈련의 목적이다.

 

물론 "직접타격, 인질구출, 대테러, 수중 파괴, 폭파 선견작전, 폭발물 처리, 특수정찰, 경호"가 주된 목적인 특수부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출처 : 다음 카카오

임무 수행에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높은 책임감이 요구되는 만큼 일반적인 훈련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하지만 <가짜 사나이>는 정식 훈련도 아니고 민간군사기업인 <MUSAT>의 공식 클라이언트도 아닌데 왜 저런 훈련이 필요할까.

 

출처 : 나무위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짜 사나이>의 제작진과 우리 사회는 아직도 군대를 '사람 만드는 곳'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강한 규율과 기합, 체벌로 과거의 모습을 싹 씻어내고 올바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겠다는 근대적인 마인드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3. 그럼 군대의 목적은 무엇일까.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일정한 규율과 질서를 가지고 조직된 군인의 집단"을 군대라고 부른다.

 

네이버 영영사전

가장 유명한 영어사전인 옥스퍼드와 콜린스 컨텐츠를 토대로 더 풍부한 뜻과 유의어, 예문을 제공.

koreal.dict.naver.com

여기서 군인은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람"으로 "육해공군의 장교, 부사관, 병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군인의 정의와 목적을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정한 조직체계에 소속되어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받고, 전시에는 직접 전투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군인(軍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방제도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정한 조직체계에 소속되어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받고, 전시에는 직접 전투에 종사하는 사람.   

encykorea.aks.ac.kr

사회적 의미뿐 아니라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과 같은 법령에서도 "국군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며 군대의 정의와 목적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군인의지위및복무에관한기본법

 

www.law.go.kr

이처럼 군대는 국가의 재산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 집단이다. 따라서 한 개인을 올바른 인간으로 길러내는 곳이 아니다.

 

올바른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가정과 학교, 더 나아가 국가의 영역이지 군대가 아니다. 군대는 군사 조직인데 어떻게 교육을 담당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애초에 상하관계, 명령과 복종이 존재하는 집단에서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가 '인간 개조의 장'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군사독재 시절의 군대 문화 때문이다.

 

출처 : 중앙일보

당시의 군대는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한 능력도, 책임 의식도 없었다. 오로지 사회적·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고 처벌과 통제의 목적이 강했다.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전방에 보내거나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도덕관을 바로 세운다"는 이유로 거지, 부랑자, 노숙자, 폭력배를 강제로 납치해 교육했던 <삼청 교육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출처 : 뉴스앤조이

군사 조직에 걸맞는 전투 방법·체력 증진·정신 무장·무기 운용법·전술·전시 행동요령 등을 배우는 게 아니라 변기에 머리 박기, 원산 폭격, 한강 철교, 목봉 체조, 발로 정강이 차기, 인간 사다리, 깨진 유리병 사이로 포복, 강제 노역, 구타, 감금, 물고문 등 처벌만 있었다.

 

다시 말해서 처벌과 감시로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어 고분고분한 상태로 내보내는 게 당시 군대의 역할이었다.

 

출처 : 한국일보

이러니 군대가 무슨 제 기능을 할 수 있었을까. 말로는 간첩이 수시로 내려와 국가를 흔들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횟수가 매우 적었고 국가에 고발된 간첩 사건들 중 대다수가 현재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냥 국가 통치를 위해서 군대로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영화 "자백", 권력의 민낯을 들추다

영화 "자백", 권력의 민낯을 들추다

newstapa.org

이와 같은 처벌의 문화가 지금까지 전해져 '군대란 인간이 되어서 나오는 곳'이라는 인식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5. <진짜 사나이>는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서 "체험이 아닌 실제 입대를 통해 타인과 동고동락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정신적·체력적인 한계에 도전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게 제작의도이자 프로그램의 목표였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가짜 사나이>는 "나태한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한 훈련 체험"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얘기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다른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정말 중요하다.

 

출처 : 가짜사니이 시즌1 썸네일

그러나 그런 경험은 규율과 체벌로만 습득되는 게 아니다.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운동을 통해 자기의 한계를 느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며 새로운 지식에 도전할 수 있으며 갑자기 사회인 극단에 가입해 연기를 하며 한계를 경험하고 또 극복할 수 있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후자의 경험이 훨씬 더 긍정적이다.

 

군필자들이 군대 얘기만 나오면 부들부들 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갖 폭언과 폭력을 겪다 보니 군대 얘기만 들어도 미간이 확 찌푸려지는 것이다.


6. 지금까지 <가짜 사나이>의 속성을 살펴봤다면, 이제 <가짜 사나이>가 왜 이렇게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출처 : 모비인사이드

 

① 높은 수위

유튜브 컨텐츠는 공중파의 엄격한 잣대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 송출할 수 있고 시청 제한의 기준 역시 낮아 누구든지 쉽게 볼 수 있다.

 

② 자극적인 컨텐츠

사고 현장에서 기웃거리거나 인터넷에 살인·실종 등 사건 사진을 검색하는 심리와 같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물에 들어가는 모습이나 너무 달려서 토를 하는 모습, 서로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자극적인 것들이다. 자극적인 컨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쉽다.

 

③ 특수부대라는 특수성

특수부대는 보안상의 이유로 언론 노출이나 정보 공개가 상당히 제한된 미지의 영역이다.

 

심지어 아무나 갈 수 없고 선정된 사람만 경험할 수 있는 특수한 곳이므로 그런 경험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④ 군대라는 공통의 경험

③번의 호기심과 함께 군필자들에게는 복습과 미필자들에게는 예습으로 작용해 인기가 많아졌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상당히 의미있는 분석이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tvN의 <푸른거탑>이 상위권에 있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군대가 워낙 독특한 집단이고 인생에 한 번만 경험할 수 있어서 더욱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부분도 있다.

 

⑤ 다른 집단에 대한 호기심

의외로 여성 시청자가 많은데 아마 군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궁금한 마음으로 시청한 것이 아닐까 싶다. 궁금증은 생각보다 굉장히 큰 동기가 된다.

 

⑥ 강력한 기반

구독자 300만 명이 넘는 김계란의 <피지컬 갤러리>가 한몫했다. 만약 김계란이라는 구심점 없이 게스트들만 모여서 방송했다면 이런 폭발력이 나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⑦ 밈의 탄생

자극적인 요소와 더불어 나름의 개그 포인트가 있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너 인성이 문제있어?", "4번은 개인주의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등의 명장면이 나오면서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 유입되었다. 일종의 역주행.

 

⑧ 완벽한 캐릭터

솔직히 <가짜 사나이>의 지분은 거의 이근 대위에게 있다. 특유의 교포 말투와 제스처, 츤데레스러운 성격이 방송에 딱 들어맞은 것.

 

온갖 밈과 짤로 인터넷에서 회자되며 현재는 광고와 방송 출연까지 겸하고 있다.

 

최근에 터진 채무 관계가 치명적이었으나 워낙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 조용히 지나갈 것 같은 분위기다.

 

⑨ 후속 대처

이건 좀 신선한 부분인데 보통 군대 체험 프로그램은 체험자 입장에서 끝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짜 사나이>는 시즌이 모두 종료하고 직접 교관들을 출연 시켜 소감이나 아쉬운 점을 묻는 등 나름의 새로운 연출을 시도했다.

 

이로써 시즌2에 대한 홍보나 시청자와의 소통까지 모두 챙긴 셈.


7. 결론적으로 <가짜 사나이>는 인간 개조라는 근대의 군대문화를 방송적으로 잘 엮어낸 폭발력 있는 컨텐츠다.

 

시즌2에는 기업 스폰서나 연예인도 지원한 만큼 앞으로 하나의 장르로 굳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다만 여전히 의문인 부분들이 있다. 첫째, "개인의 나태를 극복하기 위한 한계 체험"이라면 왜 굳이 애국 요소를 넣은 것일까.

 

방송 업데이트 날짜를 국군의 날로 지정하거나 지속적으로 군대 관련 발언을 하며 군대=애국이라는 코드를 넣고 있는데, 이게 프로그램의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출처 : 국방TV

 

그냥 군인이 받는 훈련이라 넣는 것 같은데 어쨌든 조회 수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겠으나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정치적 논쟁에 덜 휘말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둘째, 시즌 2의 가학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시즌 1은 말 그대로 훈련을 받는 컨텐츠였다.

 

개인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개인의 한계를 체험한다는 프로그램 목적에 어느 정도 부합했다.

 

그런데 시즌 2는 어떤가. 시즌 초기부터 가학 포르노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강도가 높은 체벌과 훈련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출처 : 가짜사나이 시즌2, 에피소드2 중 장면 캡쳐

분명 시즌1은 "체험"이었다. 하지만 시즌2에서는 실제 훈련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는데에서 의구심이 든다.

 

실제 지원자도 아니도 일주일간 체험하는 게스트에게 실제 훈련의 강도를 요구할 이유가 있을까.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바꿔 말하자면 자극적인 부분이 더욱 늘어났다는 얘기다.

 

셋째, 우리는 그냥 즐기면 끝나는 걸까. <가짜 사나이>에 대한 논란이 터질 때마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불편한 사람들은 보지 말아라", "그냥 방송인데 선비들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출처 : 가짜사나이 시즌2 썸네일

 

하지만 이런 의견과 달리 <가짜 사나이>의 가학성 논란은 일부의 불편한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

 

자극적인 컨텐츠의 성공은 더욱 자극적인 컨텐츠가 나오는 환경을 만든다. 지금은 입수, 강제 기상, 구보 등 일정한 주제 안에 자극적인 내용이 섞여있지만 자극성만 높아지다 보면 역으로 자극이 주제가 되어 온갖 선정적인 컨텐츠가 나올 게 뻔하다.

 

굳이 어려운 실험 사례나 마케팅 이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극만 쫓는 컨텐츠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8. 따라서 우리는 자극적인 컨텐츠의 생산과 소비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모든 자극을 없애자는 극단적인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어떤 컨텐츠를 자극적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지 기준을 정하고, 규제를 어길 시 어떤 처벌을 받는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또 기존의 그런 가이드가 있으면 어떤 부분이 부실하고 개선해야 하는지 논의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이 필요하다.

 

여기엔 전문가의 입장만 반영되서도 안 되고, 소비자의 입장이 다른 의견보다 우선되어서도 안 된다.

 

이게 유교 탈레반이나 선비로 비난하며 넘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준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진지한 얘기들이 오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각막 찢어지고 기절 직전까지…'가짜사나이2' 가학성 논란 | 연합뉴스

각막 찢어지고 기절 직전까지…'가짜사나이2' 가학성 논란, 김정진기자, IT.과학뉴스 (송고시간 2020-10-10 07:30)

ww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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