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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ssay/(2) Document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마감 음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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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는 마감 10분 전인 21시 50분부터 네덜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윱 베빙(Joep Beving)의 연주곡 <Sonderling : 별난 사람>과 일본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니시무라 유키에(西村由紀江)가 연주하는 <ビタミン : 비타민>이 나온다.

 


난 두 사람의 연주가 참 좋았다. 일단 곡의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윱 베빙의 연주곡은 차분하고 무거운 곡인 반면에 니시무라 유키에의 연주곡은 밝고 경쾌했다. 상반된 분위기가 주는 간극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곡 분위기뿐 아니라 네덜란드와 일본이라는 환경적 차이, 60년대생과 70년대생이 겪었을 사회·문화적 격차, 손목 부상으로 피아니스트를 그만두고 공무원이 되었으나 음악을 포기할 수 없어 광고음악 회사에 취직해 음악을 만들었던 윱 베빙과 평생 피아노를 놓지 않고 늘 정상에 머물렀던 니시무라 유키에의 성장 배경 등 거의 모든 곳에서 간극이 느껴졌다.

 



그 밖에도 차분함과 경쾌함이라는 대립적인 관계에서 전해지는 긴장감, 어둠(차분함-슬픔)과 빛(경쾌함-행복)을 연상케 하는 이분법적인 메타포가 주는 지적인 희열을 통해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아 두 사람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윱 베빙과 니시무라 유키에의 연주가 주는 성취감이 제일 좋았다. 도서관 마감 음악을 들었다는 건 늦은 시간까지 과제나 공부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나름 생산적인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집에 갈 수 있었다.

 

출처 : 언디스커버리 뮤직(https://www.udiscovermusic.com/classical-news/joep-beving-hermetism/

뿌듯하다는 마음 안에는 여러 감정이 존재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교차하며 묘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오직 뿌듯하다는 표현만이 이런 묘한 감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학교에 가면 꼭 마감 시간에 맞춰 두 곡을 들어야 한다'는 규칙까지 만들 정도로 연주곡에 중독되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책만 펼쳐놓고 두세 시간 넘게 마감 시간만 기다리며 멍을 때리거나 사물함에서 미리 짐을 챙겨 스피커랑 제일 가까운 곳에 서 있기도 했다.

 

출처 : 연세대학교(https://yonseisinology.org/publications/webzine/2207)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마감 시간까지 있었다는 뿌듯함이 좋았던 건지, 연주곡이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우선순위야 어쨌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밤늦게 중앙도서관이나 학교를 지나갈 때마다 윱 베빙과 니시무라 유키에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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